AI 기술은 혁신의 상징에서 이제 ‘기업 리스크 관리’의 핵심 변수로 전환되고 있다. 생성AI와 자율 시스템이 비즈니스 전반에 통합되면서, 기술 실패나 오작동이 단순한 비용 손실을 넘어 평판, 규제, 법적 대응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미국 상장사들은 AI가 기존의 내부 통제 체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유형의 불확실성을 야기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컨퍼런스 보드(The Conference Board)와 이에스게이지(ESGAUGE)가 ‘S&P 500 기업의 AI 위험 공시: 평판, 사이버보안, 규제(AI Risk Disclosures in the S&P 500: Reputation, Cybersecurity, and Regulation)’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S&P 500 기업의 72%가 AI를 ‘중대한 위험(Material Risk)’으로 공식 공시했으며, 이는 2023년 12%에서 불과 2년 만에 6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보고서는 “AI가 더 이상 실험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기업의 평판·보안·규정 준수 리스크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평판 위험: ‘한 번의 오류’가 브랜드 신뢰를 무너뜨린다

보고서에서 기업의 38%가 ‘평판 손상’을 AI 도입의 가장 큰 위험으로 꼽았다. AI 모델의 판단 오류, 잘못된 콘텐츠 생성, 서비스 중단은 소비자 신뢰를 빠르게 붕괴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특히 소비자 대상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자동화된 의사결정이 차별, 왜곡, 불공정으로 비칠 경우 즉각적인 사회적 반발과 불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컨퍼런스 보드의 브라이언 캠벨(Brian Campbell)은 “AI는 실패가 실시간으로 확산되는 특성을 가진다. 단 한 번의 오류도 고객의 신뢰, 투자자 평판, 규제기관의 조사를 동시에 촉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AI 프로젝트의 실패, 모델 통합 지연, 또는 과대광고된 성과 불이행은 브랜드 이미지에 장기적인 손상을 남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이버보안 위험: 공격 표면 확대와 공급망 노출

2024년과 2025년 모두 기업의 20%가 AI 관련 보안 위험을 언급했다. 보고서는 AI가 새로운 데이터 흐름과 모델 훈련 구조를 통해 “공격 표면을 기하급수적으로 확대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AI로 강화된 공격 기법은 탐지 회피, 위조 콘텐츠 생성, 내부 데이터 유출을 수월하게 만들어 적대 행위자의 역량을 증폭시킨다.

기업들은 AI 모델의 코드 취약성, 클라우드 공급망 의존도, 제3자 SaaS 환경에서의 데이터 접근 권한 관리가 새로운 취약점으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18개 기업이 공급업체 노출을, 17개 기업이 데이터 침해를 주요 우려로 명시했다. 이는 AI가 기존의 보안 경계를 흐리고, 외부 연계망을 통한 위협 확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법적·규제 리스크: 불확실한 거버넌스의 지속적 부담

법적·규제적 위험은 단기적 사고보다 장기적 위험으로 인식되고 있다. 41개 기업이 “진화하는 규제 체계”를 가장 큰 부담으로 지목했다. 보고서는 특히 EU AI법(EU AI Act)을 언급하며, 고위험 시스템에 대한 적합성 평가, 비준수 시 처벌 조항 등 복잡한 의무가 도입 단계부터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기업들은 AI 훈련 데이터와 관련된 저작권 분쟁, 자동화된 의사결정 책임 소재 등 법원이 아직 확립하지 않은 판례 리스크를 지적했다. 12개 기업은 새로운 AI 규칙으로 인한 규제 강화 및 집행 위험을, 6개 기업은 “자율 AI 시스템 피해에 대한 책임 불확실성”을 보고서에서 언급했다. 이는 AI 거버넌스가 기술보다 법적 프레임워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새로운 위험 영역: 지식재산, 개인정보, 기술 채택 불확실성

지적재산권(IP), 개인정보 보호, 기술 채택 리스크는 새롭게 부상한 항목으로 분류됐다.

24개 기업은 AI 모델 학습을 위한 데이터 사용이 타사 저작권 및 영업 비밀 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을 지적했다. 13개 기업은 개인정보 보호법(CCPA/CPRA, GDPR 등)에 따라 민감 정보 노출 시 법적 처벌 위험을 우려했다. 또한 8개 기업은 AI 플랫폼 도입의 높은 초기 비용, ROI 불확실성, 확장성 부족을 새로운 ‘전략적 리스크’로 제시했다.

이는 AI 도입이 단순한 기술적 혁신이 아니라, 기업의 장기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 의사결정의 영역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이번 보고서는 AI가 기업 운영의 모든 층위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수치로 입증했다. 2년 만에 6배 증가한 공시율은 단순한 규제 대응을 넘어, AI를 리스크 관리 및 지배구조의 핵심 축으로 재편해야 함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AI 리스크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라며, 경영진이 기술 도입뿐 아니라 이해관계자에게 명확하고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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