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분야에서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헬스 기술의 활용이 급증하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윤리적 기준 마련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디지털 전환은 환자 맞춤형 치료, 원격진료, 예측 의료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지만, 동시에 데이터 활용에 대한 책임성과 투명성, 환자의 권리 보호라는 윤리적 과제를 수반한다.

특히 생성AI를 비롯한 고도화된 알고리듬 기술이 의료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윤리적 기준 없이 기술만 앞서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의료 생태계 전반의 신뢰 기반 협업을 위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었다.

6개 글로벌 의료 대표 단체가 공동으로 의료 분야 인공지능 및 디지털 데이터 사용에 관한 윤리 원칙을 채택했다. 이번에 채택된 원칙은 기존 윤리 협약인 ‘윤리적 협력을 위한 국제 합의 프레임워크(International Consensus Framework for Ethical Collaboration, ICF)’에 다섯 번째 원칙으로 추가된다. ICF는 환자, 의료 전문가, 제약 산업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국제 윤리 협약으로, 2014년부터 의료 생태계 내 책임 있는 관계를 촉진해 왔다.

이번에 채택된 다섯 번째 원칙은 AI와 디지털 의료 시대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의료 데이터의 자율성(autonomy), 데이터 관리(data stewardship) , 공동 책임(shared accountability)을 핵심 가치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환자 중심의 윤리적 접근을 기반으로 기술 발전과 함께 반드시 따라야 할 기준을 강조한다. 기존 ICF의 네 가지 원칙은 ▲환자 우선, ▲윤리적 연구 및 혁신 지원, ▲독립성과 윤리적 행동 보장, ▲투명성과 책임 증진이었으며, 이번 원칙은 여기에 디지털 혁신 대응 원칙으로서의 의미를 더한다.

AI 시대 윤리 원칙의 내용과 영향

이번에 추가된 윤리 원칙은 디지털 시대의 핵심 기술로 부상한 AI, 특히 생성AI 알고리듬 기반 의료 기술의 확대 속에서 더욱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원칙은 의료 데이터의 수집과 사용에 있어 자율성을 존중하고, 기관과 개인의 데이터 관리 책임을 명확히 하며, 관련 당사자들이 공동으로 책임을 나누는 구조를 정립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는 의료기관, 제약사, 연구기관뿐 아니라 환자 단체까지 포함하는 집단적 윤리적 합의를 강조하는 내용이다.

국제병원연맹(IHF) 로널드 라바터 최고경영자는 “어떤 병원도 급속한 의료 기술 발전을 독립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십과 집단적 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제간호사협의회(ICN)의 하워드 캐튼 최고경영자 역시 “데이터와 기술은 진료 방식을 개선할 수 있으나, 윤리는 우리가 왜 그리고 누구를 위해 진료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한다”며 원칙의 인간 중심 철학을 지지했다.

환자 중심의 가치도 이번 원칙의 핵심으로 꼽힌다. 국제환자조직연합(IAPO)의 다니 모치 최고경영자는 “이번 원칙은 환자의 권리 보호 측면에서 중요한 진전”이라며, 환자 조직의 적극적인 참여와 실제 경험 반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기술 중심이 아닌, 사용자 중심의 의료 데이터 활용 문화를 조성하는 데 핵심적이다.

세계의학협회(WMA) 회장 아쇼크 필립 박사는 윤리 원칙이 회복력 있는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초석이라며, 특히 취약 계층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윤리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약사 측에서도 국제 약사 연맹(FIP) 폴 싱클레어 회장이 “모든 회원이 지역 실무에서 이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며 책임 있는 의사결정과 협력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향후 적용 계획 및 공동체 확산 노력

국제제약제조협회(IFPMA) 데이비드 레디 사무총장은 “ICF는 지난 10년간 의료 서비스 제공 파트너 간 강력한 동맹과 공유 가치를 키워왔다”며, 이번 원칙 채택이 디지털 의료의 윤리적 미래를 여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 밝혔다. 그는 “혁신이 가속화될수록 윤리적 협업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며, 집단적 책임의 가치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6개 기관은 이번 원칙을 바탕으로 각 국가와 지역에서의 적용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 각 기관은 소속 단체와 회원들에게 새 원칙을 실무에 반영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실질적 실행을 위한 교육과 협력 프레임워크를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특히 병원, 간호사, 약사, 환자 단체, 제약 기업 간의 이해관계 조율 및 공동 지침 마련이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윤리 원칙은 생성AI와 같은 첨단 기술의 확대 속에서 의료의 본질적인 목적과 가치, 그리고 환자의 권리를 재조명하며, 기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의 균형 회복을 위한 글로벌 의료계의 공동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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