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지금 ‘디지털 주권(Digital Sovereignty)’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점에 서 있다. 데이터와 인프라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고 외부 기술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단순한 기술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되었다.

글로벌 기술 공급망의 불투명성과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진 오늘날, 유럽 기업은 자신들의 보안 생태계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자율적 능력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팡랩(HarfangLab)의 2025년 사이버 보안 현황 보고서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명확히 드러난다.

외부 의존의 위험과 자율성의 필요

필자는 여러 유럽 기업 경영진과의 논의에서 공통된 불안을 느꼈다. 비유럽 클라우드 공급자와 보안 도구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결국 전략적 취약성으로 이어진다. 중요한 데이터가 외국 관할권에 노출되고, 업데이트와 패치가 정치적·법적 이유로 지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팡랩의 조사에 따르면, 유럽 기업 리더의 54%가 조달 과정에서 데이터 주권을 핵심 고려 요소로 삼고 있으며, 31%는 완전한 클라우드 기반보다 온프레미스 보안 솔루션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통제권의 문제다.

응답자의 70%가 비유럽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것이 장기적인 회복탄력성에 필수적이라고 동의했다. 이는 ‘편의성에서 통제력으로’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디지털 주권은 고립이 아닌 자율성의 개념이다. 국가와 기업이 데이터를 스스로 관리하고, 공급망을 직접 검증하며, 기술적 결정을 독립적으로 내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자율성이야말로 사이버 공격이나 지정학적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디지털 경제의 기반이 된다.

AI와 중소기업이 만드는 새로운 사이버 회복력

AI는 사이버 보안의 위협 환경과 방어 전략 모두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하팡랩은 생성AI와 자동화된 위협 분석 기술을 결합하여 유럽 내에서 자율적으로 운영 가능한 보안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AI 기반의 위협 탐지·대응 시스템은 데이터가 외부로 이동하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위험을 분석하고 대응할 수 있다. 이는 데이터 주권과 보안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핵심 기술적 해법이다. AI가 제공하는 분석 역량은 외부 공급자 의존을 줄이고, 유럽의 기술 독립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진정한 디지털 주권은 대기업만의 과제가 아니다. 유럽의 중소기업은 지역 기술 생태계의 핵심이며, 이들이 독립적인 보안 역량을 갖추는 것이 전체 대륙의 회복탄력성을 결정한다. 이를 위해 유럽은 다양한 배포 모델을 지원하고, 공급망 투명성을 높이며, 중소기업이 접근 가능한 보안 솔루션을 확대해야 한다. 국경 간 협력 또한 필수적이다. 국가 간 기술 표준화와 위협 정보 공유가 강화될수록 유럽 전체의 보안 면역력은 높아진다.

디지털 주권은 단순히 데이터 저장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과 의사결정에 대한 통제권을 의미한다. 필자는 유럽의 기업들이 자율성과 신뢰 가능한 기술 생태계를 기반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하팡랩은 유럽의 가치와 법률에 부합하는 보안 기술을 개발하며, 조직이 독립적이면서도 협력적인 디지털 환경을 구축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진정한 사이버 회복력은 외부 의존을 줄이고, 스스로의 보안 경계를 정의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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