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여름, 무더운 여름철의 필수품 선풍기에도 재미난 과학이 숨겨 있다. 선풍기의 과학 원리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선풍기의 역사를 들여다보자.

회전 날개가 달린 선풍기는 1800년대 이전에도 일부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선풍기는 지금의 선풍기와 같이 전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동이나 기계식으로 움직이는 방식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1600년대에는 천장에 매달아 놓은 추의 무게를 이용하여 한 장으로 된 커다란 부채를 시계추 모양으로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는 장치가 있었다고 한다.

1800년도 중동에서는 ‘푼카’라는 선풍기를 사용했는 데 회전축을 돌리면 연결된 추가 위로 올라가고 내려오는 힘으로 기어 장치에 연결된 날개가 움직이면서 바람을 발생시켰다고 한다. 이 푼카 선풍기는 지금도 중동 지역의 호텔에서 일부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의 선풍기 같은 외관을 갖추게 된 것은 1903년 인도의 칼 조스트(Carl Jost)라는 발명가가 만든 조스트 핫 에어 팬(Jost Hot Air Fan)이라는 물건이다. 전기가 아니라 석유로 구동되는 스털링 엔진을 사용했다고 한다. 밀폐된 공기를 가열시켜서 상하 운동을 회전 운동으로 바꾸는 원리이다. 시원한 바람을 만들기 위해 뜨거운 석유 램프를 사용하다니 이상하지만 20년 동안이나 생산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전기를 사용한 최초의 선풍기는 1882년 미국의 엔지니어 쉴러 스카즈 필러가 발명했는데요. 이 사람은 전기 엘리베이터도 발명했다고 한다.

모터에 두 개의 날개를 달아 바람을 일으키는 개인용 양날 선풍기를 만들었는데, 첫 발명품은 회전하는 날 주위에 보호 철망이 없어 꽤 위험한 제품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장에서 생산할 정도로 제품화에는 성공했다. 한국에서는 191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선풍기가 도입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조그만 선풍기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틀어 놓은 것을 보신 적이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1960년 4월에 금성사가 국산 1호 선풍기를 출시했다. 이제 선풍기는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고 손에 들고 다니거나 목에 걸고 다니면서 더위를 이기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선풍기에서 나오는 바람은 시원하지 않다. 그냥 실내 온도와 똑같은 온도의 바람이다. 선풍기를 틀면 시원해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가 바로 기화열이다. 공기의 입자가 바람에 의해 피부와 부딪히면서 땀이나 수분을 증발시키게 될 때 우리 피부에서 기화열이 빠져나가면서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몸에 물이 묻어 있거나 수분 함량이 많은 로션을 바른 상태일 경우에는 기화열로 잃은 체온이 늘어남으로 더 시원함을 느낀다. 선풍기 바람이 아니라 자연의 바람이나 부채가 시원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두 번째 이유는 선풍기가 바람을 강제로 순환시키기 때문이다. 땀이 하나도 안 난 상태에서도 선풍기 바람을 쐬면 그냥 좀 시원한다. 이 이유는 우리 주변의 온도가 체온보다 낮기 때문이다. 이때는 기화열이 없이도 시원함을 느낄 수가 있다. 체온으로 더워진 주변 공기를 더 낮은 공기로 바꿔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에 주변의 기온이 피부 표면보다 높다면 선풍기를 틀면 더 더워질 수도 있다.
선풍기의 버튼을 누르면 바로 강한 바람이 나오고 바람 세기도 조절할 수 있다. 이 원리는 바로 선풍기 안에 있는 모터에 있다. 선풍기의 날개는 모터의 회전축에 연결되어 있다. 모터는 전기 에너지를 회전 운동으로 바꾸어 주는 장치이다. 모터 안에는 강한 영구 자석이 들어있고 그 사이에 전선 코일이 들어 있다. 전원을 켜고 코일에 전류가 흐르게 되면 자기장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면 같은 극끼리는 밀어내고 다른 극끼리는 당겨내는 자력의 힘에 의해서 회전축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선풍기 날개를 연결해 두면 날개가 빠르게 회전하게 된다. 바람의 세계는 가변 저항이라는 것을 이용한다. 바람의 세기는 회전하는 회전 수에 따라 달라지고 이 모터의 회전수는 전류의 크기에 비례하게 된다. 그래서 모터에 전해지는 전류의 양을 조절하면 모터의 회전 속도가 변하면서 회전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이 회전 속도에 따라 바람의 세기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가변 저항은 저항의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장치이다. 저항을 크게 하면 모터로 들어가는 전류의 양이 작아져서 팬이 더 천천히 돌게 되고 바람이 약해진다. 사용자는 간단하게 버튼만 누르지만 선풍기 안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동작이 일어난다.
선풍기 날개가 돌아가기만 한다고 시원한 바람이 불게 될까? 선풍기 날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날개가 경사가 진 것을 볼 수 있다. 이 경사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선풍기 날개가 경사각 없이 수직으로 되어 있다면 날개가 아무리 돌아가도 바람은 하나도 불지 않는다. 선풍기의 이 경사면이 바람을 만들어낸다. 모터를 이용해 날개를 회전시키면 경사면이 선풍기 뒤쪽에 있는 공기를 강제로 앞으로 밀어내면서 바람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선풍기의 날개 수와 경사 각도에 따라 바람의 세기와 품질도 달라질 수가 있다. 선풍기의 날개 수가 작으면 날개의 크기가 더 커지면서 한 번에 밀어내는 바람의 양이 많아져서 바람의 세기가 더 커질 수 있다. 날개 수가 작아지면 날개의 크기도 작아지면서 날개 간격이 좁아져서 바람을 더 촘촘히 잘라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바람의 세기는 더 약해지지만 더욱 부드러운 바람을 만들어 준다.
요즘은 에어 서큘레이터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에어 서큘레이터와 선풍기는 회전 모터에 날개를 달아 바람을 일으킨다는 구조는 완전히 동일하다. 선풍기가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직접 바람을 보내는 장치라면 에어서큘레이터는 말 그대로 환기를 위한 장치이다.
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날개의 개수와 면적 각도를 다소 조정하고 원통형의 껍데기를 씌워 강한 바람을 멀리 보내도록 만든 것이 에어 서큘레이터다. 그래서 일반적인 선풍기에 큰 종이로 원통형의 껍데기만 씌워줘도 거의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가 있다. 요즘 가정에서 에어 서큘레이터를 사용하는 이유는 에어컨 바람이 집안 구석구석 퍼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에어 서큘레이터는 소형 제품의 경우에는 최소 7~8m, 최대 20여 미터까지도 바람을 똑바로 쏘아 보낼 수 있는 것도 있다. 강한 지향성을 가지고 뻗어 나간 에어 서큘레이터의 바람은 벽이나 천정에 부딪히고 흩어지면서 실내 공간의 공기를 골고루 순환시켜서 방 안의 온도를 쾌적하게 균일하게 만들어주는 장점이 있다. 특히 에어컨이나 히터 같은 냉난방기구를 사용할 때 에어 서큘레이터를 같이 사용하면 방 안의 온도가 빠르게 원하는 수준으로 도달하게 되고 전기요금이 크게 절약된다고 한다.
선풍기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날개 없는 선풍기이다. 처음 나왔을 때 “날개도 없는데 어떻게 시원한 바람이 이렇게 나오지?”하고 다들 신기해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날개 없는 선풍기는 조그마한 기둥에 원형 모양의 통이 달린 모습을 하고 있다. 2009년 영국의 회사 다이슨이 처음 개발했고 원래의 이름은 에어 멀티플라이어라고 한다. 말 그대로 공기를 증폭하여 바람을 세게 일으키는 원리이다. 원기둥 모양의 스탠드에는 비행기의 제트 엔진을 연상시키는 날개와 모터가 탑재되어 있다. 제트엔진의 추진력을 얻기 위해 날개를 회전시켜 필요한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날개 없는 선풍기도 스탠드에 내장된 날개와 전기 모터로 아래쪽에서 공기를 흡입한다.

다이슨 제품의 경우 초당 약 27L의 공기를 빨아들인다. 일반 선풍기가 빨아들이는 공기량의 약 3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빨아들여진 공기는 위쪽에 둥근 고리의 내부로 밀어 올려지는 데 이 고리의 공간이 당연히 밑에 있는 원기둥보다 훨씬 좁다. 그래서 속으로 빨려 들어간 공기는 유속이 시속 90km 정도로 매우 빨라지게 된다. 빨라진 공기는 비행기 단면 모양의 벽을 타고 고리 안쪽면에 나 있는 작은 틈을 통해 빠른 속력으로 배출된다. 빠른 공기의 흐름은 고리 안쪽의 기압을 낮아지게 만든다. 고리 안쪽의 기압이 낮아지면 당연히 주변의 공기들이 고리 안쪽으로 몰려들게 된다. 그래서 강한 공기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치 강제로 빌딩풍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이 과정에서 고리를 통과하는 공기의 양은 기둥으로 빨려 들어간 공기보다 약 15배 정도 증가한다. 그래서 다이슨은 이 같은 기술에 공기를 증폭한다는 뜻의 에어멀티플라이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공기가 흐르는 길을 좁게 해서 속도를 빠르게 하고 빨라진 속도가 압력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다. 바로 베르누이의 원리이다. 날개 없는 선풍기의 핵심 기술에는 이처럼 ‘공기나 물 같은 유체의 속력이 증가하면 압력이 감소하고 속력이 감소하면 압력이 증가한다’는 베르누이의 원리가 숨어 있다.
바람을 만드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날개에 있는 선풍기와 날개 없는 선풍기는 바람의 품질이 다르다. 날개 있는 선풍기는 뒷부분의 공기를 빠르게 날개로 잘라서 앞으로 밀어주는 방식이다. 반면에 날개 없는 선풍기는 공기의 흐름을 끊지 않고 이동시켜서 훨씬 자연스러운 바람을 만들어준다. 날개 있는 선풍기 앞에서 소리를 내면 ‘아.아.아.아’ 하고 떨리는 것처럼 들리는 것도 바로 공기의 흐름이 단절되기 때문이다.
선풍기와 공기의 대류 현상을 이용하면 여름을 더 시원하게 보낼 수가 있다. 대류 현상은 공기는 온도가 낮으면 밀도가 크고 온도가 높으면 밀도가 작기 때문에 찬 공기는 밑으로 깔리고 뜨거운 공기는 위로 올라간다는 원리이다. 이런 원리로 에어컨은 바람을 위로 향하게 하고 히터는 바람을 아래로 향하게 하라는 것이다.
선풍기 사용 시에도 이러한 대류 현상의 원리를 적용시킬 수가 있다. 우리가 창문을 꼭 닫아 놓고 장기간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여름에는 집안이 찜통처럼 뜨거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외부로 향하게 하면 집안의 더운 공기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가 있다. 물론 최대한 높은 곳에 선풍기를 놓아야 더운 공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또 에어컨을 틀 때 선풍기를 낮은 쪽에서 천장 쪽으로 틀어주게 되면 찬 공기가 순환되어 방안을 골고루 빠르게 시원하게 만들 수도 있다.
* 필자 한선화 박사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을 역임하였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정책본부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24년간 몸담은 KISTI에서 전문위원과 AI 데이터 진단 및 치료 벤처기업 페블러스의 수석 데이터 커뮤이케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KTV 과학톡의 고정 패널, TJB 대전방송의 과학 해설 프로그램 곽마더, 미래 핵심기술을 소개하는 미래설계소 등 다양한 과학 관련 방송에 출연하였으며, 현재는 TJB 대전방송의 생방송투데이에서 최신 과학기술 이슈를 알기 쉽게 전달하며 과학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 이 칼럼은 GTT KOREA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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