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따뜻해지고 화사한 꽃이 피기 시작하면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꽃은 봄이 온 걸 어떻게 알고 꽃을 피우게 되는 걸까?

식물의 개화 시기는 일반적으로 기온과 낮의 길이에 따라 달라진다. 꽃을 피우는 식물을 광주기에 따라 분류하면 낮이 길 때 꽃이 피는 장일 식물, 짧을 때 꽃이 피는 단일 식물, 그리고 이와 관계없이 꽃을 피우는 중일 식물로 나뉜다. 낮이 길어지는 봄에 피는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 등이 장일 식물이고, 낮이 짧아지는 가을에 피는 국화나 코스모스가 대표적인 단일 식물이다. 또 온도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개화 시기에 온도가 높게 되면 일반적으로 예년보다 빠르게 꽃이 핀다. 종합해보면 봄꽃은 일조 시간이 길고 기온이 높으면 개화 시기가 빨라진다.
그런데 이러한 예보를 믿고 벚꽃 축제 날짜를 잡았는데 정작 꽃은 축제 전에 피어나 낭패를 본 일도 있었다. 이처럼 개화 시기가 빨라진 이유는 2월과 3월의 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높고 일조 시간도 평년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서울 벚꽃이 관측 100년 사상 가장 빠르게 개화해 큰 화제가 되었다. 1922년 벚꽃 개화 시기를 관찰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빨랐다. 2월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2.3도 높은 2.7도였고, 3월 역시 평년보다 3.2도 높은 8.3도였다. 일조 시간의 합도 2월에는 181시간으로 평년보다 17시간 43분이 많았고, 3월도 평년보다 20시간 12분이나 많은 158.5시간이었다.
‘봄꽃이 개화했다’라고 공식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벚꽃처럼 한 개체에 많은 꽃이 피는 다화성 식물은 임의의 한 가지에서 세 송이 이상 꽃이 활짝 피었을 때를 개화로 판단한다. 이를 위해 표준 관측목이라고 하는 벚꽃 개화의 기준이 되는 묘목을 정해 운영하고 있다.
같은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동네마다 꽃이 피는 것이 다 다르기 때문에 주요 지역 및 지점의 기준이 되는 묘목을 정해 운영을 한다. 서울을 예로 들면 종로구 송월동에 있는 기상관측소의 왕벚나무를 표준 관측목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나무의 한 가지에 세 송이 이상의 벚꽃이 피게 되면 서울에 벚꽃이 공식적으로 개화했다고 선언한다. 이 표준 관측목의 80% 이상이 피었을 때 벚꽃이 만개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벚꽃이 개화하고 난 뒤 일주일가량 뒤에 만개한다.
대전의 벚꽃 관측 표준목은 대전지방기상청에 식재된 벚나무다. 2022년에는 3월 22일 관측 이래 가장 빠르게 개화가 관측됐는데 이때 대전 지역의 3월 평균 기온은 10.2도, 일조 시간은 253.4시간으로 평년 대비 평균 기온은 3.6도, 일조 시간은 45.7시간이 많았다.
사실 봄꽃이라고 하면 목련이 피고 개나리 피고 진달래 피고 벚꽃 피고 철쭉 피고 이렇게 차례차례 폈다. 하지만 요즘은 모든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봄꽃마다 꽃피는 시기가 다른 이유는 꽃마다 필요한 가온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온량은 식물이 받은 온기가 얼마나 되는지를 계산한 수치다. 모든 동물과 식물은 계절에 따라 반복하는 특성이 있다. 이를 생물 계절이라고 한다. 식물의 발아, 성장, 개화, 결실, 낙엽, 고사 등과 동물의 겨울잠, 발정, 분만 등이 생물 계절이다. 이 생물 계절에 따라 봄에 꽃이 피는 데 필요한 온도를 채우면 식물이 꽃을 피우게 되는데 이 누적 온도를 계산한 수치가 가온량이다. 기상청은 전국 73개 기상관서에서 매년 생물 계절을 관측하고 있다. 이런 데이터가 쌓이면 기온 변화에 따라 어느 지역의 어떤 식물이 언제 꽃을 피울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개나리는 가온량이 84.2, 진달래는 96.1, 왕벚나무는 106.2이다. 개나리가 가장 먼저 피고 벚나무가 늦게 피는 이유가 자연스럽게 설명이 된다. 현재 기상청은 예보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우리나라에 맞는 생물 계절 모형을 개발해 검증하고 있다.
가온량을 계산할 수 있으면 꽃이 피는 날짜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걸까? 지금 개화 시기를 예측하는 방법은 통계적인 방법을 따른다. 기상청은 각 지역의 표준나무의 과거 개화 시기와 장기 기후 자료로부터 얻은 정보를 이용해 통계적으로 꽃이 피는 날짜를 예측한다. 그런데 기후 이변으로 날씨가 변덕을 부리면 이런 통계식이 잘 맞지 않게 되고 이전에 관측한 정보가 없는 곳에서는 아예 예보가 불가능하다.
가온량을 사용하면 이미 지난 날짜에 대한 축적된 온도는 알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이 가능하다. 기존의 통계적 방식으로 개화 시기를 예보했을 때 전국에서 오차가 3일에서 일주일로 나타났는데 생물계절 모형을 사용하면 오차가 최대 2일까지 줄어든다. 그래도 여전히 너무 심한 기후 변화가 있어 앞으로의 온도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다면 가온량을 정확히 계산할 수 없어 부정확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물의 개화 과정을 분자 수준으로 파헤쳐서 보다 정확한 예보를 시도하기도 한다.
개화 유전자를 추적하는 방법이다. 봄이 되어 기온이 올라가면서 식물은 개화 유전자를 방해하는 FLM과 SVP 단백질 양을 줄여 결국 꽃을 피운다. 이상 고온이 계속되면 단백질이 더 빨리 줄어들면서 개화가 앞당겨진다. 이들 단백질이 줄어드는 양상을 관찰할 수 있다면 비교적 정확한 개화 시기도 알 수 있다. 또 개화와 관련된 AP1 유전자가 나오기 시작하면 언제 꽃이 필지를 알 수 있다. 애기장대의 경우 AP1 유전자가 나오기 시작하면 4~5일 안에 꽃을 피운다. 그런데 생물계절 모형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예측 정확도도 1~2일 내로 맞추지는 못하기 때문에 아직 실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봄꽃의 개화 시기가 빨라지면 꽃도 빨리 보고 좋지 않을까. 하지만 꿀을 수집하는 꿀벌들에게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봄꽃이 빨리 피게 되면 기온의 변동 폭이 큰 시기에 꿀벌들이 채집 활동을 시작한다. 벌통에 머무르면서 체력을 비축해야 하는 시기에 밖으로 나와 활동을 하게 되니 면역력이 떨어지고 각종 질병과 해충에 노출되어 꿀벌에게는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꽃이 개화하는 시기가 빨라지는 만큼 꽃이 지는 시기도 당겨져서 꿀을 채집할 수 있는 기간도 짧아진다.

사실 꽃과 나무의 종류에 따라 개화 시기가 다른 것은 자손을 퍼뜨리기 가장 좋은 시기에 개화를 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진화한 생태 시계에 따라 “지금이야!”하고 꽃을 피웠는데 실제로 번식의 매개자가 될 곤충과 동물이 움직이지 않으면 생태계 전체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곤충의 봄은 오랜 시간 동안의 자연 선택을 통해 식물의 봄과 자연스레 시공간적으로 동조화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곤충과 식물의 관계에 있어서 탈동조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곤충과 식물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신호다. 이런 생태적 불일치는 식물에서 동물로 이어지는 영양 단계에서 예기치 못한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수분 매개와 이어지고 인간의 식량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먹이 사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인간의 식량 위기를 유발할 수도 있다. 그러니 ‘벌이 없어지면 꿀을 덜 먹으면 되지’라고 쉽게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되겠다.
*필자 한선화 박사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을 역임하였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정책본부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24년간 몸담은 KISTI에서 전문위원과 AI 데이터 진단 및 치료 벤처기업 페블러스의 수석 데이터 커뮤이케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KTV 과학톡의 고정 패널, TJB 대전방송의 과학 해설 프로그램 곽마더, 미래 핵심기술을 소개하는 미래설계소 등 다양한 과학 관련 방송에 출연하였으며, 현재는 TJB 대전방송의 생방송투데이에서 최신 과학기술 이슈를 알기 쉽게 전달하며 과학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 칼럼은 GTT KOREA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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