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7일 서울에서 충전 중이던 전기차 배터리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기차 화재는 해마다 늘고 있다. 2018년 3건에 불과했던 화재가 2022년에는 44건에 달했고, 지난해는 7월까지 이미 49건에 달했다. 그런데 사실 화재가 늘어난 데는 전기차가 그만큼 많이 보급된 이유도 있다.

한선화 박사 / KISTI 전문위원·페블러스 수석 데이터 커뮤니케이터
한선화 박사 / KISTI 전문위원·페블러스 수석 데이터 커뮤니케이터

우리나라의 전기차는 등록 차량 기준으로 2018년 5만 6천 대에서 2022년에는 39만 대로 늘어났고 2023년에도 15만 8천 대가 팔려서 약 55만 대가 되었다. 수치가 말해주듯 전기차 화재는 보급 대수에 비하면 내연기관차 화재의 발생 비율인 0.01%와 유사하다. 하지만 누구의 과실도 없이 갑자기 화재가 발생하고,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배터리의 온도가 순식간에 치솟는 열폭주로 전이돼 손쓸 수 없이 번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낀다.

2020년부터 2023년 8월까지 발생한 전기차 화재 94건 가운데 약 17%인 16건은 블랙박스, 보조 배터리, 휴대용 충전기와 같이 차량에 장착된 액세서리에서 불이 비롯됐다. 전기차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외부 요인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28%인 27건은 운전석의 열선 같은 차량 기타 부품에서 불이 났다. 그런데 가장 많은 51건의 화재가 고전압 배터리에서 발생했다.

전기차 화재 중 절반 이상은 배터리가 원인인 셈이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 폭발의 원인으로는 리튬 이온 배터리의 특성, 배터리의 과충전, 외부 충격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래서 배터리 충전량은 90% 이하로 제한하는 게 필요하고 외부 충격은 충돌 사고를 조심해야 한다.

전기차에 사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대체로 크기가 작고 에너지 밀도가 높아 화재나 폭발에 취약한 편이다. 리튬이온 2차 전지는 양극과 음극, 전해액과 분리막의 4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안전을 담당하는 것이 분리막이다. 양극화 음극이 직접 접촉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 분리막이 열이나 충격 또는 제조상 결함으로 손상되면 양극과 음극이 서로 접촉돼 쇼트가 일어나면서 발열이 일어나고, 가연성 물질인 전해액이 타면서 급격한 온도 상승으로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하나의 셀에서 이런 반응이 일어나 온도가 상승하면 이웃한 셀의 온도도 올라가 분리막에 녹게 되고 이것이 열폭주로 이어지는 것이다. 네이처 논문에 따르면, 전기차에서 화재가 나면 배터리 양극제의 열분해가 이루어지며 내부 온도가 급격히 올라 15초 안에 1000도가 넘는 열폭주가 발생할 수 있다.

과충전으로 인한 폭발 위험성도 크다고 알려져 있다. 과충전으로 음극 표면에서 리튬 금속이 나뭇가지 모양으로 축적되면서 분리막을 뚫게 되는 경우도 있고, 또 과충전 과정에서 전해질 및 기타 물질이 가스를 분해하여 산소가 음극 표면에 축적된 리튬 원자와 반응하도록 해서 배터리가 폭발할 수도 있다.

이처럼 배터리의 단점을 보완하고 화재 위험성을 낮추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기차 배터리의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대체하는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연구다. 불연성인 고체 전해질을 사용하면 화재나 폭발에 대한 근본적인 예방도 가능하고, 양극과 음극의 물리적 접촉을 막아주는 분리막도 필요 없어 배터리의 부피도 줄일 수 있고 용량도 높일 수 있다.

고체 전해질은 이론적으로 에너지 밀도가 높고 화재 위험성이 적어 전고체 배터리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하지만 고체 전해질 소재의 제조 단가가 높고 전극과의 접촉에서 발생하는 계면 저항 등 기술적인 한계가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고체 전해질을 혼합해 사용해서 각각의 단점을 보완하고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제조된 전고체 배터리는 별도의 압력을 가하지 않고도 상온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이며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와 견줄 수 있는 성능 수준을 달성했다.

또 다른 차세대 배터리들도 많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차세대 2차 전지 연구는 크게 안전성과 경제성의 두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을 위한 연구에 해당된다.

최근에는 리튬 인산철 LFP 배터리가 주목받고 있다. 리튬 인산철은 다른 양극제에 비해 안정성이 뛰어나고 철과 인산을 사용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에너지 밀도가 낮다는 단점도 있다. 그래서 주로 저가형 전기차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국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는 2021년 중간급 배터리를 LFP로 바꾸기도 했다.

비싼 코발트 사용은 줄이고 니켈 사용을 늘린 배터리도 연구되고 있다. 단순히 가격 문제뿐 아니라 니켈 함유량이 높아지면 에너지 밀도가 높아져서 주행거리 증가와 고출력 전기차 제조도 가능해진다. 니켈 함유량이 80%에 달하는 배터리도 상용화됐고 니켈이 90% 포함된 배터리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지속 중이지만 하이니켈 배터리의 경우 안전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한 리튬 이온 배터리 음극재인 흑연을 실리콘으로 교체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실리콘은 흑연보다 10배나 많은 리튬 원자를 저장할 수 있다.

문제는 실리콘은 충방전 시 흑연에 비해 3배가량 팽창과 수축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는 배터리에 부담을 주며 수명을 단축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어 이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상용 리튬 이온 전지에 비해 두세 배 정도 높은 에너지 밀도를 구현할 수 있는 리튬황 전지도 차세대 2차 전지 후보군 중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양극재로 코발트 대신 매장이 풍부하고 저렴한 황을 사용하고, 음극재에는 흑연 대신 리튬 금속을 쓰는 배터리다. 이 소재들은 밀도가 낮고 무게당 용량이 커서 에너지 밀도를 2배까지 높이며 배터리 경량화를 할 수 있다. 코발트와 니켈 같은 희귀 금속 재료를 사용하지 않아 친환경적이다. 이처럼 리튬황 배터리는 가격 경쟁력을 갖춘 것은 물론 친환경 고용량 배터리를 구현할 수 있어 차세대 배터리로 조명받고 있다.

전기차 보급이 점점 늘어나면서 제도적인 문제도 드러나고 있다. 최근 서울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의 경우 지하에서 충전 중이던 전기차에 불이 나 주민 70여 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지하 주차장의 입구가 낮아 소방차 진입도 안 되다 보니 화재 진압에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전기차 화재 중 지하 주차장같이 밀폐된 공간에서 발생한 화재가 37%나 된다. 그래서 새로운 충전소 설치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가급적 지상에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거나 또 이미 지하 주차장에 설치된 충전소의 경우에는 불이 옮겨붙지 않도록 방화 펜스와 스프링쿨러 역시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최근 3년여간 전기차 화재의 절반 이상은 고전압 배터리에서 발생했지만 정작 이런 화재를 예방할 수 있는 검사가 가능한 검사소는 전국 10곳 가운데 3곳뿐이다. 전기차 보급과 함께 이런 것도 시정되어야겠다.

전기차는 이제 보급 초기단계다. 대기오염을 줄여 환경을 보호하는 미래 자동차인만큼 안전성과 편의성을 모두 고려한 법∙제도적, 물리적 인프라를 갖춰 나가는 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필자 한선화 박사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을 역임하였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정책본부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24년간 몸담은 KISTI에서 전문위원과 AI 데이터 진단 및 치료 벤처기업 페블러스의 수석 데이터 커뮤이케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KTV 과학톡의 고정 패널, TJB 대전방송의 과학 해설 프로그램 곽마더, 미래 핵심기술을 소개하는 미래설계소 등 다양한 과학 관련 방송에 출연하였으며, 현재는 TJB 대전방송의 생방송투데이에서 최신 과학기술 이슈를 알기 쉽게 전달하며 과학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 칼럼은 GTT KOREA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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